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독일 국방군의 전쟁범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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===== 유고슬라비아 ===== 또 다른 치안전쟁이 벌어지던 [[발칸반도]]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. 세르비아에 있던 12군사령관 [[빌헬름 리스트]]와 [[프란츠 뵈메]]의 경우 별다른 명령이 내려오지 않았음에도 휘하 사단들을 동원해 세르비아 유대인들을 거의 쓸어버린 인물들이다. 1941년 10월 15일에서 같은 달 20일까지 벌어진 크랄례보 학살(Kraljevo massacre)이 대표적 예시다. 당시 [[티토]]의 [[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]]과 미하일로비치의 [[체트니크]]가 독일군에 저항 중이었고, 독일군은 이들을 박멸하기를 원했다. 역시 유고슬라비아에서도 독일은 공산주의자와 유대인, 민주주의자를 싸잡아서 타겟으로 지목했고, 리스트 원수 휘하의 독일군은 다수 지역에서 [[우스타샤]]와 [[독일 공군]] [[Ju 87]] [[급강하폭격기]]대의 협조를 얻어 대량 학살을 저질렀다. 크랄례보 학살도 그 중 하나였다. 제342보병사단과 뵈메 대장이 이끄는 제18산악군단이 주도하였는데 제18군단 대부분은 과거 [[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군]] 출신자들이었고, 때문에 그들은 세르비아에 대한 감정이 매우 좋지 못했다. 뵈메 대장은 크랄례보 학살을 앞두고 이는 세르비아인들이 [[프란츠 페르디난트]] 대공을 암살한 것에 대한 복수라고 천명했을 정도였다. 거기다 그들은 당대 오스트리아에 만연했던 [[반유대주의]]도 가지고 있었다. 크랄례보 학살에서만 3000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. 대부분은 민간인이었다. 1943년 이후 F 집단군이 형성되고 [[막시밀리안 폰 바익스]]가 부임한 이후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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